인터뷰: [미국 대중음악] 의 저자 래리 스타(Larry Starr)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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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팝 음악의 역사는 곧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중음악의 복잡한 역사와 다층적인 문화의 면면을 두루 살피게 하고 음악을 듣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해줄 반가운 책이 소개되었습니다. [미국 대중음악] (한울)은 음악학자인 두 명의 교수가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게 대중음악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교재로 처음 고안한 책으로, 현재 대중음악에 관한 가장 충실하고 친절한 가이드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저자 중 한명인 래리 스타 교수와 워싱턴 대학에서 대중음악 수업을 함께 진행한 바 있는 역자 김영대가 그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봤습니다.[/box]

 

김영대: 어쩌면 ‘드디어’라는 말이 적합할 듯 싶다. 처음 번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것이 아마 3년전이었나? 당신의 대중음악 세미나 수업이 끝나고 찾아가 의견을 구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같은 기분이었지만, 흥분했던 당신의 얼굴이 생생하다.

래리 스타: 아, 흥분할 수 밖에 없었지.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었으니까. (웃음)

김영대: 하하. 그렇다. 어쨌든 오랜후에 드디어 이 책을 직접 전할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뿌듯하게 생각하는 건 이 책이 직접 배우고 함께 일했던 선생님인 당신의 책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공식적으로 첫번째 외국어 번역판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분이 어떤가.

래리 스타: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한국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물론 교재로 의도하고 만든 책이고 미국에서 처음 발매된 책이긴 하지만 최대한 폭넓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다가가기 쉽게 배려하는 것이 나와 워터먼의 집필 의도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 직접 번역해주어 더 영광이다.

김영대: 어떻게 처음 이 책을 구상했나. 대중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라면 누구나 강의 노트나 파워포인트 정도는 자료로 갖추고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것을 하나의 거대한 책으로 엮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것이다. 학계에서는 사실상 최초인 셈인데, 처음이니만큼 어쩌면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래리 스타: 크리스토퍼 워터먼과 나는 워싱턴대에서 함께 대중음악 수업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마 1980년대 후반으로 기억한다. 지금처럼 큰 강의였는데 (*워싱턴대의 American Popular Song 은 400-700 명이 수강하는 교내 최대 규모의 인기 강의이다) 몇년이 지나서 당시 음대 학장이었던 사람이 우리에게 교재를 집필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당시만 해도 교재로 활용할만한 대중음악 개론서는 전무했던 상황이었으니까.

김영대: 솔직히 지금도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래리 스타: 우리의 기본적인 구상은, 음악을 문화로서 이해하는 음악인류학자인 워터먼과, 스타일적으로 접근하는 음악학자인 내가 함께 서로 다른 관점과 장점을 한데 조화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것이었다. 대개 대중음악에 관한 책이나 연구라고 한다면 문화나 스타일 어느 한쪽을 택해 집중하게 마련인데, 두개의 다른 관점을 결합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김영대: 집필은 어떻게 분담했나? 사실 어느 챕터에서도 당신이 말한 두가지의 관점이 함께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래리 스타: 처음엔 각자 자신이 관심있거나 자신있는 분야를 쓰기 시작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서로의 글을 상호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함께 완성했다. 매우 길고도 힘든 작업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책을 쓰는 와중에 워터먼이 UCLA의 학장으로 이직하면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작업할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열심히 이메일로만 소통하며 마무리했다. 출판사 옥스포드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종종 독자들이 이 책이 마치 한 사람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할때가 있는데, 기분 좋은 말이다.

김영대: 대중 음악은 그냥 듣고 좋으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어떤 음악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어쨌든 그 음악을 모른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대중음악을 연구하고, 나아가서 강단에서 학생과 일반 대중에게 음악을 가르친다고 할때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이 측면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당신은 강단에서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을 동시에 가르치고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두가지 음악에 대해 다르게 접근하는 지점이 있는가?

래리 스타: 기본적으로 다를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음악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그 음악을 더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늘 믿어왔다. 클래식을 예로 들어보면, 지금 말한 ‘일반 대중’들조차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데 큰 문제를 겪지 않는다. 다만 그에 맞는 ‘언어’를 갖추지 못했을 뿐이다. 음악을 가르치는 중요한 목적중 하나는 잘난척하거나 허세 부리지 않고 그들에게 음악을 말하는 알맞은 ‘언어’를 주는 것이다. “마지막에 결론을 짓는 구절이 들리지요? 그것을 종지(cadence)라고 한답니다. 자, 가서 친구들에게 아는척 하세요” 이런 식으로 유머러스하게 말할 수도 있다. 또 한가지 측면은, 이 언어들을 연습함으로써 이미 알고 있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더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곡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편곡이나 구조, 프레이즈나 코드와 같은 언어를 통해 살피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김영대: 결국 음악을 가르친다는 점에 있어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는 말로 이해하면 좋을까.

래리 스타: 그렇다. 물론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가령, 대중음악을 가르치는 것이 종종 그것을 무시하는 방향이 되지 않도록 느껴지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순수하게 학문적이고 분석적인 영역에서 볼 때 훌륭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을 올바로 납득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떠한 곡이 화성적으로 훌륭하거나 가사적으로 정교하지 않아도 어쨌든 즐길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문화라는 측면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는데에는 수없이 다양한 이유가 있고, 그것은 종종 매우 개인적이다. 그리고 그게 문제가 될 건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객관적으로 ‘훌륭한’ 음악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이 학자로서는 늘 어려운 부분이다.

김영대: 내가 생각하기에 클래식 음악을 가르치는 것과 대중음악을 가르치는 것의 결정적인 차이는, 어쨌든 우리가 배우는 클래식 음악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이면서 음악적인 수준이 검증된 것이지만 대중음악에서 대중성은 늘 음악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한다.

래리 스타: 그럴수도 있다. 특히 비디오나 퍼포먼스가 중요한 가치가 된 현 세대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어떤 음악이 춤추기에 좋거나 목적에 부합한다든가 하는 등의 실용적 가치가 학문적인 관점에서 어떤 곡의 미학적인 완성도나 깊이와 일치한다고만은 볼 수 없으니까.

김영대: 대중음악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리고 계속 공부를 해나가면서 나는 늘 “이 음악은 호소력이 있다. 왜냐하면 멜로디가 캐치하기 때문이다”와 같은 허무한 분석을 넘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예전에 당신의 수업을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무 설명 없이 템테이션스의 “My Girl”을 틀고는 2절이 시작되며 스트링이 들어오는 부분을 반복적으로 들려주며 눈치 챘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런 작은 요소들이 음악의 ‘캐취함’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소위 ‘비평적으로 듣기’에 대한 예시였던 걸로 이해했다.

래리 스타: 그렇다. 가령 60년대의 경우 반복적인 스트로픽 형식의 곡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편곡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던 시기였고, 그 점에 있어서 청자가 단순히 곡의 멜로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곡의 구성이나 구조, 편곡등에 관심을 가지고 ‘비평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그 곡이 가진 핵심적인 매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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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대: 학자이자 음악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성장과정을 들려달라. 클래식을 전공했을 테지만 동시에 로큰롤 시대를 몸소 겪으며 자랐을 것 같은데.

래리 스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집에서 클래식 음반들을 즐겨 들었다. 78rpm 레코드가 주된 매체였는데, 알지 모르겠지만 78rpm 음반의 특징은 매우 쉽게 깨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한 교향곡을 1,2 면을 듣고 중간을 건너뛴 채 7,8면을 듣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다. 중간 파트가 어땠는지는 나중에 되서야 알 수 있었다. (웃음) 동시에 로큰롤 라디오 세대이기도 했다. 50년대 말 라디오의 가장 멋진점은 탑40 라디오가 ‘모든’ 음악을 다 틀었다는 것이다. 57년 탑10만 놓고 보더라도 엘비스 프레슬리나 팻츠 도미노 뿐 아니라 패티 페이지, 프랭크 시나트라 등도 함께 섞여 있었는데, 다양한 장르를 딱히 구별하지 않고 자연스레 함께 듣고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도 내가 듣는 레코드 중 몇몇은 ‘이건 좋은데?’ 하며 마음에 들어 하셨고, 내가 음악을 듣고 공부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격려해주었다.

김영대: 퀸스 칼리지와 UC 버클리에서는 대중음악을 따로 배우진 않았나? 이미 50년대 이후 미국 대학에서도 재즈나 대중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래리 스타: 당시만 하더라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재즈나 뮤지컬 등 소위 말해 ‘세속’ 음악을 함께 배우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뭐랄까, 나 개인적으로는 이같은 이상한 ‘분파’적 사고방식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가 슈베르트, 콜 포터,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의 음악 사이에 존재하는 완전히 다른 것들을 존경하는가 생각해보았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들 사이의 유사점, 흡사한 면들을 존경하고 관심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내 연구와 교수법에 반영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교수가 되고 수업을 맡게 되면서 나는 대중음악을 분석의 사례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나는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나누는 그 같은 ‘분열주의’적 시각을 경계했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늘 노력했다.

김영대: 아무리 그래도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래리 스타: 학생들이 그 둘을 완전히 다른 두개의 카테고리로 생각하지 않게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예를 들어 내가 가르친 ‘낭만주의’ 음악 수업에서는 브람스의 4번 교향곡과 듀크 엘링튼의 ‘Koko’를 함께 가르쳤는데, 두 곡 모두 변주곡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그 둘은 기존의 형식을 가지고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 시켰다는 측면에서 있어서 사실 완전히 동일한 음악적 접근법을 가지고 있는데, 차이가 있다면 브람스가 8마디의 베이스 라인을 중심으로 변주되었다면 듀크 엘링튼은 12마디 블루스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디테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둘을 한곳에서 논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은 모두 최고의 작곡가들이고 그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다만 다른 스타일로 그 생각을 구체화 시켰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김영대: 대중음악 담론, 특히 저널리즘의 영역에서는 그간 위대한 명인들과 명곡의 이름과 제목을 나열하고 점수나 순위를 매기는 것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다. 죽기 전에 들어야 할 몇 곡이라든지, 역사를 빛낸 뮤지션 100명과 같은 것들이다. 흥미롭기는 하지만 정작 글을 읽어보면 음악사적인 의미나 평가에 대해서는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혹은 추상적인 단어들로 표현되어 있다. 지나치게 흥미 위주일 때도 있다. 음악학자로서 평단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나?

래리 스타: 글쎄, 사실 누구나 좋아하는 것 아닐까? 순위를 매기거나 리스트를 만드는 것. ‘과일 이름이 들어간 최고의 곡 베스트’같은걸 만들어도 재밌을거다. (웃음) 거듭 말하지만 누군가가 위대하다거나 어떤 곡이 훌륭한 곡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를 음악적으로 상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영대: 같은 맥락에서 [미국 대중음악]을 읽고 내가 개인적으로 무척 신기했던 것은, 당신과 워터먼은 대중음악 작품을 마치 클래식 음악을 다루듯 상세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종종 마디나 소절 단위로 쪼개기도 하고. 교수나 학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음악을 듣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이러한 작업이 대중음악을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는가?

래리 스타: 물론이다. 대중 음악에 대해 쓰여진 책을 보며 가끔 의아한 것은 종종 음악 자체에 대해 깊이 천착하는 글이 드물다는 것이다. 문화적 맥락이나 영향력, 그리고 종종 가사에 지나친 비중을 두고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김영대: 세월에 따라 음악을 듣는다는 것의 의미나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래리 스타: 지금 세대들이 음악을 듣는 문화적인 배경은 내가 처음 대중음악을 열심히 듣고 자랐던 시대와는 당연히 다른 모습이다. 가령 음악에서 시각적인 측면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하자면, 50-60년대에 음악 감상에 영향을 주는 시각적인 효과란 그저 레코드 판이 돌아가는 것을 보는 정도였다 (웃음). 또 하나, 그 시절과 지금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면 그 당시에는 ‘올디스’나 흘러간 음악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없었다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정보는 탑10 차트로만 접할 수 있었고, 순위에서 사라진 음악들을 따로 찾아듣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김영대: 결정적인 차이는 상징적으로 LP와 MP3라는 서로 다른 매체에서도 나타난다. 심지어 요새 젊은 세대는 다운로드도 받지 않고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찾아듣는다. 그리고 그 라이브러리의 유무는 과거와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이다. 도서관이나 라디오를 통할 필요도 없이 사실상의 무한 엑세스가 가능해진 셈이다. 역으로 그같은 자유도가 음악을 더 열심히, 비평적으로 듣는 것을 방해한다고 보지는 않는가.

래리 스타: 방해한다기 보다는 종종 그 가치를 쉽게 평가절하할 위험이 있다 생각한다.

김영대: 게다가 대부분은 공짜다. (웃음)

래리 스타: 그렇지. 내가 어렸을때는 0.89 달러로 싱글 음반을 샀는데, 1주일동안 내가 쓸 수 있는 용돈의 대부분이었다. 나로서는 중요한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김영대: 최근에 흥미로운 변화는 mp3의 다운로드가 줄어들고 cd가 사실상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데에 반해 마니아를 위한 바이닐 레코드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라는 것 자체가 여전히 중요한 경험이 됨을 알 수 있다.

래리 스타: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이 답해야 할 문제겠지만, 책을 화면이 아닌 종이로 읽는 것, 음악을 음반으로 재생하는 것 모두 3차원적인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영대: 또 다른 측면에서, 음반을 통한 음악 듣기는 결국 ‘앨범’이라는 고전적인 음악 형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래리 스타: 적어도 훌륭한 레코드 프로듀서나 뮤지션의 머리속에는 하나의 앨범을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 짓고, 또는 음악들을 모으고 배열할지에 대한 의도가 들어 있다. 그리고 청자들이 그러한 자신의 의도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을 요구한다. 비틀즈의 Abbey Road 앨범을 예로 들어보자. 음반의 A면은 “”I Want You (She’s So Heavy)”라는 곡으로 끝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노래가 갑자기 잘려나가면서 듣는 이들을 놀래킨다. 그리고 음반을 뒤집으면 “Here Comes the Sun”이 이어진다. 전혀 새로운 청각적 경험으로 마치 2막을 시작하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드는 이같은 구성은 비틀즈나 프로듀서가 청자들에게 그렇게 들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A면을 끝내고 B면으로 뒤집는데까지 걸리는 시간 역시 하나의 음악적인 의도가 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음원이나 심지어 CD로도 똑같이 얻기란 불가능하다. 억지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웃음)

김영대: 책의 내용으로 조금 더 들어가보자. 전체적인 구성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서문에서 당신들이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다섯개의 주제를 미리 제시하고 그것에 맞추어 일관적이고도 집요하게 내러티브를 전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독특하다.

래리 스타: 기본적으로 워터먼의 아이디어였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핵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중심부-주변부의 관계이다.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그 둘의 역동적인 관계를 통해 발전해왔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 대중음악에서 더욱 중요한 함의는 더이상 우리가 ‘중심’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점은 당신이 더 잘알겠지만, 가령 케이팝 등 아시안 팝의 부상이라든가 미국내에서 아시안-아메리칸들의 활약같은 것도 중요한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다음 개정판을 낼 때 즈음이면 더욱더 구체화 될 것이다. 도와달라. (웃음)

김영대: 이 책의 부제를 보면 ‘민스트럴시에서 힙합까지’ (** 원저의 부제는 ‘From Minstrealsy to Mp3’이다) 라고 되어 있다. 대개 팝 음악의 역사를 묘사할 때 그 처음은 블루스가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왜 블루스가 아니라 민스트럴시인가.

래리 스타: 대답은 간단하다. 민스트럴시야말로 ‘가장 독특하게 미국적인’ 음악으로 인지된 최초의 장르였기 때문이다.

김영대: 어떠한 점이 독특하게 미국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래리 스타: 우선 매우 기묘하고도 동시에 유연한 방식으로 아프리카계 미국 문화와 유럽계의 미국 문화가 만나 뒤섞였다는 점이 그 하나다. 이는 미국만의 독특한 이민의 역사와 인구 구성에서 기인한다. 두번째로 민스트럴시야말로 미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구가한 최초의 음악이자 19세기 최고의 인기 음악 장르였다는 점. 세번째로, 민스트럴시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하게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그 시절에 흑인과 백인 커뮤니티간의 음악적인 교류와 경쟁이 존재했고, 백인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흑인의 스타일을 받아들여 민스트럴시에 활용했다. 이는 동시에 흑인들이 민스트럴시에 뛰어들어 ‘정통성’을 주장하는 계기가 된다. 흑인들 역시 유럽인들의 화성체계나 백인들의 포크 음악이나 컨트리 스타일을 자신의 음악에 녹여내기도 했다. 이같은 긴장관계는 이후 블루스와 로큰롤, 심지어 힙합까지 이어진다.

김영대: 책에도 언급되지만 민스트럴시가 흑인이나 그들의 문화를 비하하는 의도로 행해졌다고만 단정할 수 없다.

래리 스타: 흑-백의 대결을 넘어서는 훨씬 복잡한 함의를 살펴야 한다. 종종 민스트럴시의 백인들이 연기한 흑인 캐릭터는 백인을 속이는 등 전복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이것은 흑인들, 혹은 검은칠을 하지 않은 백인이 표현할 수는 없는 주제의식이었다. 민스트럴시를 보며 느끼는 개개인의 ‘불편함’을 넘어서 그러한 과정들이 미국의 대중음악을 풍요롭고도 복잡하게 만들었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미국 대중음악을 높게 사는 부분이 된 면모인것을 연구자로서 직시해야 한다.

김영대: 또 한가지 독자들이 궁금해할 부분은 클래식 블루스-컨트리 블루스의 관계이다. 대부분의 대중에게 블루스는 단일한 음악으로 인식되어 있고, 그들이 현재 블루스라고 느끼는 대부분의 음악도 사실 컨트리 블루스에 가까운 것이다. 블루스 뮤지션들이 추구하는 스타일 역시 컨트리 블루스 스타일에 기반을 둔 것들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블루스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클래식 블루스를 먼저 언급하고 있다. 왜인가?

래리 스타: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그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블루스는 그 이전에도 남부를 중심으로 존재했지만 그 스타일을 배워와 음반으로 녹음한 것은 클래식 블루스부터였다. 재즈도 마찬가지지 않나. 최초의 공식 재즈 뮤지션은 어이없게도 백인이 이끄는 ODJB란 그룹이었다. 흑인이 재즈를 녹음하기 시작한건 무려 6년이 지난후였다. 이것은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패턴이기도 하다.

김영대: 본래의 스타일이 아닌 순화된 스타일이 먼저 등장해 기반을 닦는다든지, 혹은 백인이 흑인의 스타일을 차용해 먼저 유행을 시킨다는지 하는….그러니까 이런 모순점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령 재즈의 왕은 폴 화이트먼이고, 로큰롤의 왕은 엘비스라든지 하는 것.

래리 스타: 바로 그렇다. 폴 화이트먼을 예로 들면, 그는 적어도 그가 하는 음악 스타일에 있어서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빼어난 실력을 가진 뮤지션이었다. 그를 현대에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로 출판사의 편집담당자와 이런저런 논쟁이 있었는데, 결론은 오늘날 그의 음악을 사람들이 듣지는 않는다고 해서 그가 남긴 업적을 실제보다 작게 포장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역사가나 문화 연구자의 본분은 가능한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지 내가 그랬으면 하는 바람에 의해 역사를 재구성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영대: 또 한가지 독자입장에서 궁금한 점은, 소위 ‘모던 재즈’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즈에 어느정도 친숙한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뉴올리언스 음악의 등장, 스윙의 열풍 등이 먼저 언급되는데, 그 이후 소위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만한 비밥이나 하드밥등의 음악이 빠져 있으니까 좀 의아할 수도 있을것 같다. 가령 찰리 파커, 마일즈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등등….그들도 당대에는 충분히 ‘대중적’인 뮤지션이 아니었나.

래리 스타: 차트 음악이 아니었으니까. 그 당시 음악의 인기를 재는 척도로서 유일하게 참고할 수 있는 것은 공식적인 판매 차트 뿐이다. 자, 이런 어려움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남부에는 엄청나게 큰 블루스나 재즈 음악의 고객층이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혀 기록되거나 집계되지 않았으니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비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그 음악들은 매우 고의적으로 협소하고 수준있는 일부의 청자들을 위해 ‘감상용’ 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의 음반은 베니 굿맨 시절에 비한다면 형편없는 판매고를 기록했는데, 그렇다고 그것들이 ‘대중적’이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배타적이고 편협한 소규모의 대중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김영대: 한 장르에 기반하여 다른 음악이 등장하는, 그러니까 장르 초기에 있어서 시대 구분법은 늘 애매하다. 가령 로큰롤은 일렉트릭 블루스에 기반하여 발전되어 나온 장르인데, 일렉트릭 블루스와 초기 로큰롤의 구분은 모호하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래리 스타: 물론 책에 답이 나와 있지만, 다시 말하자면 로큰롤은 상업적인 마케팅적 구분에 불과하다. 스타일적인 용어인 블루스에 비해 로큰롤은 철저히 상업적인 용어이다. 특히 50년대 중반에 국한시켜 말하자면 쉽게 말해 그 당시 10대들이 듣던 ‘모든’ 음악은 곧 ‘로큰롤’로 불렸다. DJ 앨런 프리드가 이 단어를 만들었고, 그는 자신이 주로 트는 흑인음악을 홍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단어를 홍보했다. 팻츠 도미노가 말했던 것 처럼 자신은 그저 늘 같은 알앤비 음악을 했을 뿐인데 갑자기 사람들이 자기의 음악을 로큰롤로 불렀다는 것이다.

김영대: 수업을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종종 비슷한 질문을 하곤한다. ‘팻츠 도미노나 레이 찰스는 전혀 로큰롤같지가 않은데요? ‘ 하고. (웃음)

래리 스타: 팻 분도 당시엔 로큰롤 뮤지션이었다. 지금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그렇다.

김영대: 뻔한 질문 하날 던져보자. 척 베리와 엘비스 프레슬리. 누가 진정한 로큰롤의 제왕인가?

래리 스타: 각자의 방식으로 위대하고 또 영향력 있는 뮤지션이었다. 사람들이 종종 간과하는 것은 척 베리는 훌륭한 가수였을 뿐 아니라 위대한 기타리스트였고 또한 작곡가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매우 독창적인 음악을 써냈다. 그에 반해 엘비스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최고의 가수이자 엄청난 퍼포머였다.

김영대: 엘비스는 모든 장르에 능했다. 틴팬앨리 스타일의 발라드, 로큰롤, 그리고 컨트리까지….

래리 스타: 그렇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난다. 오래전 로큰롤이 처음으로 학문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던 시절이었다. 내 친한 친구 한명이 로큰롤에 대한 대중음악 세미나를 듣고 있었는데, 한번은 강사가 ‘다음 시간에는 척베리와 엘비스, 한명의 천재와 한명의 아이돌에 대해 강의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아주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곧바로 교수에게 “아, 엘비스가 천재였는지는 몰랐는데요?”라고 말해서 좌중을 웃겼다고. (웃음)

 

Rock 1o1 - Chuck Berry51871OO6ktL._SY300_척 베리 vs. 엘비스 프레슬리

김영대: 팝계는 수많은 라이벌들이 있다. 비틀즈 vs 롤링 스톤즈, 레넌 vs 매카트니, 혹은 마이클 잭슨 vs 프린스 등도 있고. 그런데 유독 한국의 음악팬들은 비치 보이스나 브라이언 윌슨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평가가 박한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이 책에서 당신들은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성과 혁신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그는 어떤 점에서 그렇게 위대한가.

래리 스타: 이렇게 한번 말해보자. 팝 음악 역사를 통틀어 음악만들기라는 측면에서 윌슨과 비견될 유일한 인물을 찾자면 필 스펙터 정도일 것이다. 윌슨은 앨범 전체를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접근했다. 그는 앨범의 컨셉을 세우고, 연주를 하며, 곡을 쓰고, 편곡을 맡았으며, 녹음과 사운드에 모두 관여했다. 이것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비틀즈 멤버 전체와 비교를 해도 마찬가지다. 비틀즈의 경우 멤버들의 역할을 분담했을 뿐 아니라 뛰어난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이 사운드의 대부분을 관장했으니까. 하지만 윌슨은 그 모든 작업을 거의 혼자의 힘으로 해냈다.

김영대: 비틀즈의 혁신성에 비해 비치 보이스의 업적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브라이언 윌슨은 그저 서프 음악인 정도로만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다.

래리 스타: 아이러니 한것은, 여러면에서 비틀즈는 비치 보이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틀즈가 했던 대부분의 행보는 이미 브라이언 윌슨이 비치 보이스를 통해 선보였던 것이다. 커버 아티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로큰롤 음악을 모방하고, 그리고 결국엔 매우 독창적인 뮤지션으로 거듭나는 행보는 모두 비치 보이스가 몇년을 앞서서 시도했던 것이다. 또 하나 그의 음악적 행보가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가 두번째의 삶을 얻었다는 것이다. 스마일 앨범이 좌절되고 나서 모든 이들의 브라이언 윌슨은 끝났다고 말했지만 그는 기적처럼 살아났고 21세기인 지금에도 여전히 창조적인 음악으로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대: 영화 Love and Mercy를 보면 브라이언 윌슨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꽤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래리 스타: 잘 만든 영화다. 가장 좋았던 것은 그가 스튜디오에서 실제로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나름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Pet Sounds 앨범 이후에는 같이 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정도의 완벽주의자가 되었고, “자, 45번째 테이크 갑시다”라는 말에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웃음)

김영대: 독자들의 소감을 보니 비치 보이스와 비틀즈의 영향관계가 흥미로웠다고 한다. 특히 Rubber Soul 시작해 스마일까지 이어지는 경쟁 및 영향 구도는 음악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치한 질문을 하나 더 던지자면, 당신의 선택은 어느 앨범인가?

래리 스타: 현대 사회에서 좋은 점은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거 아닌가? 다 가질 수 있으니까. (웃음) 이러한 질문은 기준을 어떻게 두느냐,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늘 대답이 바뀐다. 가령, Smile은 매우 사색적인 앨범이다. 사색적이고도 복잡한 앨범이다. 그에 반해 Pet Sounds는 더욱 감정적으로 직접적인 음악이고. Rubber Soul은 소박하면서도 창조력이 넘실대는 앨범인가 하면 Sgt Pepper는 앨범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엄청난 음악적, 극적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 각각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

김영대: 그래도 한 장을 골라야 한다.

래리 스타: 휴우. 어디 무인도라고 가야한단 말인가? 정 그렇다면 Pet Sounds를 고르겠다. Caroline No 는 들을때마다 눈물이 난다.


PetSoundsCover
Sgt._Pepper's_Lonely_Hearts_Club_Band

김영대: 역사에 ‘만약에’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을 것 같다. Smile이 원래 의도했던 그대로 비치 보이스의 앨범으로 60년대 후반에 마무리 되어 발매되었다면, 비틀즈의 페퍼 상사나 그들의 Pet Sounds를 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이 되었을까?

래리 스타: 쉽게 결론 지을 수는 없다. 물론 최근에 Smile Sessions라는 박스셋이 나와서 그 당시의 그 작업의 수준이 어떤 정도였는지를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김영대: 적어도 브라이언 윌슨 스스로는 불멸의 앨범을 만들고 있다고 느꼈을 것 같다.

래리 스타: 이렇게 예상하고 싶다. 분명 엄청난 반향이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많이 팔려나갔을 거고. 하지만 길게 보아서 페퍼상사 만큼의 충격을 준 앨범으로 음악사에 남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음악들이 지나치게 특별했음은 물론이요, 동시대적이지 않아서이다. 가령 페퍼 상사 앨범을 통해 나는 그 당시의 음악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Smile에서는 1967년에 대해 이야기할만한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 앨범은 고의적으로 ‘다른’ 작업이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엄청난 컬트로 남았을지는 모르지만 비틀즈의 앨범만큼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Beachboys_smile_cover

팝음악의 가장 유명한 미완성 프로젝트 Smile

김영대: 마지막으로 밥 딜런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다. 밥 딜런이 위대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그의 영향력은 현재 대중들에게는 비틀즈보다는 조금 덜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대중입장에서 팝 음악을 들을때 가사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측면도 하나 있겠고.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곳곳에서 명백하다. 이를테면 오늘날처럼 누구나 기타를 하나씩 메고 간단명료하지만 임팩트 있는 곡을 쓰고, 그리고 반드시 엄청난 성량이나 기교를 가지지 않아도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이런 것은 모두 딜런의 유산이 아니던가?

래리 스타: 한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얼마전에 학생들의 거듭된 요구로 ‘60-70년대 미국의 대중음악 작곡가’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가르친 적이 있다. 밥 딜런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왔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뮤지션인지에 대해 내 나름의 방어 논리를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왠걸. 무려 성악과와 오페라 전공의 대학원생들이 딜런이 얼마나 훌륭한 ‘가수’인지에 대한 발표를 준비해 온 것이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얼마나 좋은 악기를 가진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 라는 것. 그들은 딜런이 얼마나 훌륭한 타이밍과 프레이징을 구사하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식으로 가사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지 등에 대해 수준 높은 토론을 늘어 놓았다. 나로서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것으로, 정말로 인상깊은 논의였다.

김영대: 대단하다. 얼마전에 롤링스톤지가 가장 위대한 작곡가의 순위를 매겼는데, 딜런이 1위를 차지했다. 무려 매카트니나 레넌보다도 위였다. 뮤지션으로서 그의 천재성은 어떤 것인가.

래리 스타: 그는 팝 음악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해 나간 인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주제도 곡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의 능력일 것이다.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상징을 구사하고, 사랑 노래를 넘어서 반-사랑노래에 가까운 음악들을 만들기도 했는가 하면 매우 깊이 있는 심리학적인 관계에 관한 성찰을 노래에 담기도 했다. 동시에 그 말들이 음악적으로 표현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Blowin in the Wind와 같은 곡을 음악이 없이 가사만으로 읽고 큰 감흥을 얻기는 불가능하다. 결정적으로 그 음악들은 딜런의 목소리를 통해 불려질때만이 가장 높은 수준의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 불릴때 그 가사들이 가장 힘있게 대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던 사람이다. 비틀즈의 네 멤버를 한 사람으로 합쳐 놓으면 비로소 밥 딜런과 견줄 수 있다는 혹자의 평가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니다.

김영대: 밥 딜런이야 말로 로큰롤을 ‘록’으로 탈바꿈 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래리 스타: 동의한다. 그 보다 더 영향력이 있던 한 사람을 찾을 수는 없으니까. 비틀즈와 브라이언 윌슨, 그리고 밥 딜런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력과 그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음악들을 돌이키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딜런이 윌슨에 대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윌슨은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데, 다른 귀를 두고 딜런은 ‘윌슨의 저 귀를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해야 한다’고 말한적도 있다.

 

bob_dylan

 

김영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이 말이 꼭 하고 싶었다. 이 책에서 당신은 한 장르는 결코 완전히 대체되거나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계속 명맥을 유지하고 변화해 나간다는, 즉 음악 역사에 있어서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내게 큰 깨달음이었고, 음악의 역사를 장르 및 시대로 단절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블루스라는 유행가로서의 음악은 죽을지 모르지만, 그 음악적 유전자는 죽지 않고 유지된다. 이는 민스트럴시도, 틴팬앨리도, 두왑도 모두 마찬가지다.

래리 스타: 윌리엄 포크너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과거는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과거는 지나가지도 않았다 (The past is never dead. It’s not even past)”.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의 일부분이며, 그것은 때로 언더그라운드로 숨거나 보이지 않을지도 있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바로 현재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도 그렇다.

[box] 인터뷰에 응해주신 래리 스타 교수님과 사진을 찍어주신 강성중님께 특별히 감사 드립니다.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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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학생에서 저자와 역자로

[미국 대중음악] (한울/2015)

래리 스타 / 크리스토퍼 워터먼 지음

김영대 / 조일동 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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