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binai [A Hermitag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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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장르는 평론가들의 분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일종의 틀이나 겉옷 같은 것인데, 세상의 수 많은 음악(음반)들은 예외 없이 그 안에 갇히거나 포장되어 끝내 대중과 마주한다. 하지만 달리 보면 장르 정의란 결국 음악을 만드는 이들의 몫이다. 크리에이터들에게 장르는 접목의 대상이자 파괴의 대상이다. 장르는 정해진 것이 없으며, 그러므로 장르는 미완성을 제 숙명으로 여기며 자란다. 정의내렸다고 확신할 때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음악에서 장르이다.


잠비나이라는 밴드가 있다. ‘나부락’이 수록된 미니앨범과 ‘소멸의 시간’으로 시작하는 데뷔앨범 ‘차연(差延)’으로 이미 굵직한 지명도를 확보한 이 팀은 현재 세계적인 인디 레이블 벨라 유니온(Bella Union)에 몸 담고 그야말로 ‘글로벌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문고 인트로에 이은 헤비메탈 기타의 도발, 해금과 피리와 태평소가 전하는 서늘한 광기, 그리고 착란성 프로그래밍의 삼위일체는 바다 건너 서양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급기야 이들의 신보 ‘A Hermitage(은서;隱棲)’를 그 유명한 올뮤직(allmusic.com)의 메인 화면에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론 카터의 새 앨범들과 나란히 서게 했다.


알려진 바대로 잠비나이 음악은 브라질 스래쉬메탈 밴드 세풀투라의 ‘Roots’라는 앨범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그들이 브라질의 원시 리듬에 메탈리카의 박진감을 새겼듯, 잠비나이 역시 지역 토속음악(국악)에 세계 대중음악(헤비메탈, 포스트록)을 뒤섞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가령 국악이라는 이들 음악의 큰 뼈대가 전면에 나서는 ‘for everything that you lost’ 앞의 두 곡 ‘wardrobe(벽장)’와 ‘echo of creation’은 그러한 팀 성향을 가장 극적으로 들려준다. 기타, 베이스, 드럼과 국악기는 상극이라는 편견을 부수는 것이 리더 이일우의 주된 목적이었다는 걸 돌이켜볼 때 이 뜨거운 파괴감은 그래서 어떤 희열마저 느끼게 한다.


마칭 드럼과 해금, 거문고와 일렉트릭 기타의 혼돈에 맞서는 ‘abyss(무저갱)’의 랩 라임(“기나긴 수난의 감옥에서 구출할 끝없이 유전하는 수난을 종식시키는 추락”)은 또 어떤가. 앞서 나는 창작하는 이들에게 장르란 접목의 대상이자 파괴의 대상이라고 했다. 이제 이일우의 접목 본능은 힙합에까지 뻗었고, 그 본능은 기어이 곧추선 장르들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드럼의 난타와 피리 솔로로 프리재즈를 들려주는 ‘deus benedicat tibi’ 역시 그렇다. 제목처럼 절대 “평안한 여행”이 될 수 없을 이 혼란의 가치는 아마도 잠비나이 스스로가 일구어낸 장르의 가치와 같을 것이다. 구축(驅逐)과 구축(構築) 사이에서 그들의 유일무이한 장르는 파괴되고 또 생성된다. 그들의 장르에는 이름이 없다. 그래서 어쩌면 ‘the mountain’과 ‘they keep silence’의 한글 제목처럼, 억겁의 인내와 침묵만이 이들 음악의 본질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름다운 공포가 있는 앨범이다. 마치 나홍진의 ‘곡성’처럼, 이 작품 앞에서 현혹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될 것이다.

4.5 Stars (4.5 / 5)

* 이 글은 스포츠 연예 전문 매체인 <마이데일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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